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IA 타이거즈/등번호 (문단 편집) === '''5''' === 5번이라는 번호 답게 3루수들이 달았던 번호. 다만 원년에는 2루수 [[차영화]]가 달았었다. 차영화가 1989년을 끝으로 은퇴함과 동시에 1990년에 광주상고를 졸업하고 고졸연고 자유계약을 통해서 입단한 [[홍현우]]가 11년간 달았다. 홍현우는 주전 2루수와 3루수를 오갔으며, 중심타자로서 해태를 4번 정상에 올려놓았다.[* LG 트윈스에서 버려지듯이 트레이드 되어 KIA로 복귀했지만 이 때는 38번을 달았으며, 부진을 만회하지 못 하고 1년만에 방출되어 큰 의미는 없었다.] 홍현우의 FA 이적 이후 [[정성훈]]이, 정성훈이 이적한 이후에는 1차 지명으로 뽑은 [[김주형]]이 달았다. --홍현우의 등번호를 줄 정도로 기대가 컸지만 현실은 시궁창-- 김주형이 33번으로 바꾼 후에는 [[탈쥐효과]]의 산 증인인 [[손지환]]이 달았고, 이후에는 손지환의 트레이드 상대인 [[유용목]]이, 유용목이 입대한 후에는 내야 유틸리티인 [[홍재호]]와 [[황정립]]이 달면서 내야수를 상징하는 등번호로 자리매김했다. 그리고 황정립이 방출된 후에는 롯데 출신의 [[백세웅]]이 달았다가, 2016년 [[황대인]]이 이 번호를 달았다가 군에 입대하면서 2017년에는 김지성이 달고 있다. 정성훈이 기아로 돌아오긴 했지만, 56번을 달면서 5번은 홍재호가 다시 가져갔다. 2019년에는 외인타자 해즐베이커가 달았다가 방출되었고, 그 뒤 NC에서 트레이드로 건너온 [[이우성(야구선수)|이우성]]이 달았고,[* 해즐베이커와 이우성은 외야수였다.] 2020년에는 황대인이 이 번호를 다시 찾아갔다. 2021년에는 김태진이 이 번호를 달았다. 2022년에는 타자 최대 유망주 [[김도영(2003)|김도영]]이 달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